제주도 여행기

제주도 11박12일 여행기38 새별오름,이시돌성당,

오드리오드리 2017. 1. 18. 09:47

 

 

 


 

 

 

 

 

16년 10월 30일~11월9일

11박12일

 11월 5일 6일째

 

숙소에서 가까운 억새가 장관인

 새별오름에 오르기로 했다

 

힘겹게 뛰어오른 어린이

 힘이 드는지 털석 주저 앉아

탁트인 시야를 바라보고 있다

 

약간은 가파르게 오르기도 하지만 일단 오르기만 하면

 탁트인 풍경이 기막히게 좋아 대중 교통으로는 가기 어렵지만

차로 이용한다면 가을엔 꼭 추천하고 싶은곳 중 하나이다

 

억새가 장관인 이곳에서 간식도 먹으며

 한라산을 배경으로

 억새를 배경으로

요리조리 사진 담기에 바쁜 친구들

오기를 정말 잘했다며 너무 좋아 한다

이어 오설록 녹차밭으로 이동이다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변하지 않는 녹차밭

여전히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인것 같다

 

봄에 피는줄 알았더니

늦가을에

잘자란 콩나물 한웅큼 만큼

수술이 달린 녹차꽃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전망대에 올라가 피사체를 잡는 순간

나에 모습도 그림자로 나온다

 

쉴수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 백년에 한번 핀다는 소철꽃이 

어머어마하게 보물처럼 종자가 담겨져 있다

 암수가 같이 핀다는데

수꽃은 길쭉하게 거시기 하지만

암꽃은 보일듯 말듯 수많은 알을 품은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어

 

 현지인께서 성당에 다니시는데

성이시돌 목장 근처에 금악 성당과

새미 은총의 동산이라는곳을 안내해주셨다

 

 잘 정돈된 새미은총의 동산을

1시간가량 걸어가며 가이드 역활을 해주셨다

 

아일랜드 출신인 가톨릭 선교사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제주 서쪽 한림읍에 내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60년을 머물며

 제주사람에게 그거는 안됩니다 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황무지를 개척해 돼지와 양을 기르고

제주도민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냈다

 

1950년대 제주도에서 꿩을 사냥해 먹으며 지냈고

스물여섯살 파란눈의 가톨릭 선교사는

 당시 제주도 변소에서 기르던 똥돼지를 먹지 못했단다

그는 제주 사람들이 왜 가축을 제대로 기르지 않는지

이해 할수가 없었다

 

좀더 위생적인 방법으로

돼지를 길러 팔아보십시요

"많은돈을 벌수 있습니다"

 

신부는 인천에서 전남 목포로 향하는 기차에

요크셔 품종 새끼밴 암돼지를 사와

놓을데가 없어서 제주도 마당에 길렀다

 

그계기로 요약 하자면

이시돌 목장이 시초이고

양돈농업이 성업하게 됐다고 했다

 

수의사인 아버지와 신심이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1928년 6월에 9남매중 5째로 태어난 신부는

 

1975년 막사이사이 賞을 받고

제주도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당시 제주도의 불모지 땅을

평당 0.5원씩 3.000평을 1500원에 사고나니

 

 

제주도 사람들이 정신나간 외국인이

쓸모 없는 땅을 산다고 찾아와 줄줄이 팔았단다

지금 이시돌 목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이시돌 복지의원이란 이름으로

호스피스 전문시설을 만들어

 더는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가 세상을 뜰때까지

편히 지낼수 있게 도와주는 곳을 만들었다

 

종마 사업이 꽤 잘되고 있는데

그돈을 이 복지의원에 투입되여

환자들에겐 돈을 받지 않고

 

죽기전에 어디도 갈수 없는 사람들을

도울 호수피스 써비스가 부족하다 하여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게 죽을 자격이 있다면서

고향땅이 아닌 이국의 낯선 땅에서

올곧이 청춘과 인생을 바친 종교인 

외국인 맥그린츠 신부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님 같은 분들이 존재 하기에

   마침표가 없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가는것이다

 

초창기엔 비오면 비온대로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다는 곳이다

 

한바퀴 돌고 나오니

종교는 가지지 않았어도 평온한 마음이다 

 

 

테쉬폰

 이라크 바그다드 가까운곳에 테쉬폰이라는

 2000년 전의 기원을 찾을수 있단다

하지만 이곳은

 1961년 목장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맥그린치 신부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건축기술을 배워와 지은것으로 

처음엔 200채가 건축되여 보급 됐다가

 거의 없어졌고

지금은 유일하게 이시돌에서만 명소가 되여

귀중한 보물로 자리잡고 있는 테쉬폰

 친구들과 인증삿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