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기

코카서스 3개국 21일중 아르메니아 4박5일 여행기

오드리오드리 2024. 9. 27. 09:17

 

코카서스 3개국 24년 6월7일~27일

20박 21일중

아르메니아 4박5일 여행기

 

하그파트 수도원,사나힌 교회,세반호수,나반크 수도원

아자트계곡 주상절리,아라랏트설산,코비랍 수도원,

가이얀 교회,게그하르트 동굴사원,에치미아진 성당,

마테나다란 박물관,흐립스민교회,케스케이드 아트센타,

지바르트노츠 성당,

 

코카서스 3국을 눈여겨보았을 때

사전지식은 하나도 없었고

늘 여행하던 대로 옷만 챙겨 떠났던 여행이었다

코카서스 3개국 중에서 제일 작은 나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민족 집단 학살로 꼽히는 비극으로

60만에서 150만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되었다

소련의 통치하에 정복당하고

다음으로 트루기에, 이란, 아제르바이잔 주변 나라들한테

좋은 땅은 모두 뺏겼다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출구조차 없는 나라

평균고도 해발 1800m에  90% 이상이 산악지대이다

본국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은 나라

본국은 300여만 명

해외 거주자는 배가 넘는 600여만 명이 거주한다는 추정이다

한국인은 미국시민권자와 동일하게

무비자로 입국하여 18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조지아에서 출국하여 아르메니아 국경 도착이다 

입국장은 파출소보다 작은 공간에

늦은 컴퓨터로 줄을 한참이나 서야 했다

 아르메니아 화폐 단위 드람으로 환전하고

입국장을 빠져나간다 

조지아보다는 다행히 계단도 없고

오르막도 없이 수월하게 빠져나왔다

아르메니아는 살구도 많고 호두나무도 많았다

 

 

돌의 나라로 석재가 풍부해 많은 석조 성당들이 있는 가운데

이곳 언덕 위에 하그파트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다  

초기 기독교의 십자가 문양과 대주교들의 무덤이

석관 아래 있는 곳이다

 

 

 

하그파트수도원은

아르메니아 종교 건축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991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중요 교육기관의 역할도 했다

지진으로 일부 파괴되었지만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기둥과 함께 모두 석재로 지어졌다



 

아르메니아 십자가에 예수를 새기지 않는데

이곳은 독특하게 예수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의 그림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있는데

맨 위쪽은 하느님의 공간인 천국을

두 번째 공간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제일 아래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세를 상징하는 십자가이다

 

 

성서의 노아의 방주가 멈춘 곳으로 유명한

아르메니아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국가이다

아르메니아는 지리적으로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 유럽에 속하며 

이수도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다

 

하그파트수도원을 가기까지는

중국의 태항산을 닮은 많은 언덕과

가파른 골짜기를 지나야 도착한다

 지진이 일어나서 갈라진 지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절벽 위에도 아래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차 타고 지나면서 보이는 구리공장

언뜻 보기엔 폐업 같아 보였다

 

 

하그파트 근교에 위치한 사나힌 교회는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10세기에 건축되었으며 사나힌이라는 뜻은

"무엇보다 오래된"이라는 뜻으로

하그파트수도원보다

오래되었다고 한다 

물론 건물만 보아도 더 예스럽다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신령한 산으로 여겨지는 아라랏트 산이라고 믿고 있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 정착한 땅이

바로 아르메니아라고 한다 

 

 

 

많은 대주교의 무덤이 바닥에 묻혀

석관으로 덮여있고 

전설 속의 위대한 지도자인 하이크의 손자 아르메니크에서

국명이 유래되었으며

지형은 국토의 90%가 1,000m 이상의 산악지대를 이루며

평균 고도가 1800m에 이른다고 한다

 

 

살구나무는 지천이며 씨 빼고 살짝 건조하여

시장에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약 7,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조지아

  조지아가 와인 산지라면

아르메니아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특히 스탈린이 즐겨 마신 술이자

영국 처칠총리에게 1년간 마시라며 선물했다는

300병의 브랜드가 바로 아라라트 브랜드 코냑이다

 

 

사나힌 교회 인근에 미코얀 형제 박물관에서는

사나힌 출신의 천재 형제가 만든

전투기와 형제의 동상을 볼 수가 있다

 

아르메니아는 좋은 땅은 이웃나라에 거의 뺏기고 

한국의 경상도 크기의 작은 나라

바다와 접해 있지 않은 내륙국가여서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없는 나라이다

 

바다가 없는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큰 담수인 세반호수는 제주도 크기로 정말 특별하다

호수이자 바다인 세반호는

아르메니아 인들이 최고의 보물로 생각하며

교회는 피난처이자 항쟁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세반 호수=해발 1900m에 위치한

나반크수도원은

세반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더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스탈린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호수 안에 섬에 있어서

배를 타고 갔었지만

스탈린이 수력발전을 위해 터널을 뚫고

호수의 물을 빼면서 수위는 급격히 낮아져

수도원이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세계최대규모의 주상절리

아자트계곡물이 흐르는 협곡 트레킹이다

처음 보자마자 "어머나, 어머나 "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자연의 걸작품이 좋아 제주도에서도

몇 번이나 찾아갔던 주상절리

쭉쭉 뻗은 돌기둥들이 쏟아질 것 같은 돌들의 향연

이렇게 큰 절리 협곡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콩당거렸다

 

 

주름치마 같기도 하고

연필 같기도 하며

 위로 쳐다보면 벌집 같기도 한

어마어마한 주상절리 

그야말로 돌의 교향곡이 흐르는 현무암 오르간이다

낭만파들의 표현은

돌의 교향곡과 바로 옆 협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내는 물의 교향곡과 앙상블을 이루는

멋진 하모니라고 한다

보는 내내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깎아 세운 절벽 위를 쳐다만 보아도 좋았다

 

 

 

주상절리 옆 상부에는 가르니 성전이 있으며

어느 여행이든 오래된 신전이며

수도원 교회를 탐방하는데

여기만큼은 성전의 방문보다 이곳 주상절리가 압권이며

계곡전체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지만

걸작품에 빠져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제주도 주상절리 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 어머 어머 하다

 

수백 마리의 아르메니아 제비들

분양받은 것처럼 이곳에 둥지를 틀고

수십 마리씩 날아다니며

서식하는 아파트 단지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많다

처마밑처럼 흙을 물어

한국의 제비집처럼 지었다 

 

주상절리위에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가르니 성전이다

처음에는 성전보다 요새로 시작되었고

이 당시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있었다

가르니 신전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태양의 신을 모시던 사원이었다

24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은 24시를 상징하는

그리스풍의 헬레니즘 양식 신전이다

1세기경 로마시대에 세워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가르니 신전은 아자트강과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삼각형 절벽의 가장자리에 있으며

목욕탕 왕의 여름궁전이 있는 로마식 건물이다

17세기 지진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다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굴 시작 했으나

대부분 건물 부속품 돌들이 20세까지 방치되다가

1975년경에 복구되었다 

 

 

왕의 여름궁전이라는 로마식 건물이다

옛날 귀족들이 사용하던 목욕탕 유적이 남아있는데

목욕탕 밑에 물을 가열하던 시설이 그대로 남아있고

탈의실도 헬레이즘 양식의 모자이크도

일부 보존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 방문이다

대학살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터키가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 150만여 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터키 내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대부분 살해되었고

백만여 명의 부녀자와 노약자는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되어 죽었다고 한다

 

세계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나라이자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아라라트산을 품고 있는 아르메니아

옛날부터 대 아라랏산(5137m) 소 아라랏산 (3896m)

30%는 만년설로 아르메니아 땅 중동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대홍수가 끝날 무렵 노아의 방주가

최초로 머문 곳 기독교인들에게 아라랏산은 성산이다

약소국인 아르메니아는

오스만제국과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오스만 터키가 패전국이 되어

영토를 분할하는 협상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영유권을 요구하였고

터키는 아라랏산을 가지게 되었다

터키, 이란 아르메니아 세나라 삼각점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에서 매우 성스러운 산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백두산 같은 존재다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아라랏산을

터키로부터 찾아오고 싶어 한다

꿈은 버리지 않고

아르메니아 국가의 상징인 국장의 한가운데에

아라랏산이 형상화되어 있다

국장에서나마 아라랏산을 표현하여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보고 싶어서이다

터키가 이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국제회의석상에서

터키대표가 아르메니아 대표에게

당신네 영토도 아닌 아라랏산을 왜 국장에 넣었느냐

삭제하라!

이에 아르메니아 대표가 달이 당신네 나라 것이냐?

왜 터키국가에 달을 넣었느냐?

이에 터키대표가 찍소리 못하였고

그 뒤로는 국장을 가지고 시비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코르비랍수도원은

아라랏트 평원 언덕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수도원이다

"깊은 지하감옥"이라는 뜻을 가진 수도원은

코비랍수도원과 성 그레고리(257~331)와의 인연은

아랍계 귀족이었던 그레고리의 아버지는

이슬람왕의 사주를 받아

아르메니아 왕과 왕비를 암살하였지만

바로 아로마니아 병사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레고리는 터키의 카비도파아 지방으로

도망가서 살게 되며

그곳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다

그 후 고국을 잊지 못하고 귀국하여 당시의 아르메니아 왕

키리다 테스 3세 (그레고리가 암살한 왕의 아들)에 의해

개종을 강요받았지만 거절하여

과거의 악연과 항명에 분노한 왕은 그레고리를

코비랍교회의 지하 감옥에 가두고

13년을 버려두었다

 

 

이후 왕은 많은 기독교인의 박해와 살인이 있었고

결국 왕은 중병을 앓게 되었는데 

결국반복으로 꾸는 꿈의

지시를 따라 죽은 줄 알았던 그레고리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찾았다

사실 13년 동안 기독교였던 여인이 몰래 지하 감옥으로

그레고리에게 음식물을 던져주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성 그레고리의 기도로 인한 왕의 병은

기적적으로 치료되었다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였던 티리다테스 왕은

세례를 받고 서기 301년에 기독교를

아르메니아 국가 종교로 선포했다

그리하여 아르메니아는

세계에서 기독교 국가로 선언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코르비랍 수도원은

이처럼 그레고리가 13년간 갇혀 있었던

지하감옥 위에 세워졌으며

아르메니아의 영산 아라라트산을

바로 앞에서 관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

특이한 건 수도원에서 7-8km 만 가면 국경이고

아라라트산은 터키 영토라 하지만

시야가 가려져서 관망이 안되며

 산의 전경은 아르메니아 쪽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630년에 세워진 가이얀 교회

초대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에 전파하기 위해

로마 수녀회는 38명의 수녀들을 파견한다고 했지만 

그중 매우 아름다운 한 명

 바이얀에 로마 황제의 주목을 받았다  

 수녀를 불러 구애를 했으나

자신은 이미 하느님과 결혼한 몸이라며

구애를 거절하였다

박해를 피해 아르메니아로 떠난다

로마 황제는 아르메니아 왕에게

수녀들의 추적을 부탁했지만

아르메니아 왕도 반해 결혼을 강요한다 

그 수녀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협박하고

설득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믿음을 견고 하라고 한다  

화가 난 왕은 38명의 수녀들을 고문 끝에 사형시키고

왕은 알 수 없는 병을 얻고

 이후 성 그레고리에 의해 병이 낫게 하였다

아르메니아  최초의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틸다리다 테스 3세에 지어진 가이얀 교회다

 

 

다음은 게그하르트 동굴사원

절벽의 바위를 직접 파서 기둥과 벽도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의 교회

건물 반이 바위동굴 안에 들어가 있고

수도원 바깥 계단을 올라가면 2번째 동굴 예배당이 있는데 

 혼합 성가대원 4명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하고 있었다

성가를 부르면 목소리가 증폭되어

소리가 주의를 맴도는 듯하다

 

 

하루에 몇 군데를 방문하는 교회와 성당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

자귀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은

아르메니아의 바티칸으로 불리는

에치미아진 성당이다

 

 

성 그레고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그리스도가 

금망치로 땅을 치는 환상을 본 후

그 자리에 성당을 설립했다고 한다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진 곳이라는 뜻이다

 

예례반에 있는

마테 나다란 박물관=아르메니아 고대문서 보관소

아르메니아인들이

제일 자랑할만한 장소이기도 한 고대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 학생들 견학으로 인솔교사와 줄지어 찾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 칠순여행 김명희"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아르메니아에 남아있는 오래된 교회이며

7세기에 완공되었다는 흐립스민교회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케스케이드 아트센터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고

개인 컬렉션인 다수의 예술품들과

우리나라 지영호 사자상도 볼 수 있었다

케스케이드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일반 패키지보다 훨 조건이 좋은

세미투어 여행의 막바지이다

돈 많이 들이고 편안한 여행보다

절약하며 힘든 여행을 더 좋아하는 건

타고난 역맛살이다 

 

 

지바르트노츠성당유적지

하늘의 천사라는 뜻이다

600년대에 지어졌으나  930년에 지진으로

완전  파괴 되었으며 20세기 초에 발굴되었다

대략적인 모습만 유지시키고

주변에는 발굴해 놓은 돌덩어리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복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언제 복원될지 모를 3층건물로

모형을 재현해 놓을걸 보면 엄청 웅장 했을듯하다 

근처에 당시 와인을 만들던

와이너리의 유적들도 함께 발굴되었으며

성 그레고리가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저녁에는 예레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공화국 광장에서

야경 분수쇼를 보며 즐겼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밀가루를 얇게 밀어서

화덕에 구운 라바쉬를 주식으로 먹는다

크기는 양손으로 벌려도 될 만큼 크고 넓었다 

적당히 손으로 뜯어서

각종 야채를 넣고 돌돌 말아서 먹는다

아침엔 뷔페식 점심엔 거의 현지식이라

빵과 아르메니아 주식인

라바쉬를 넘치도록 차려놓으니 먹고도 남는 게

다반사였다

저녁에 자유식일 때가 많았지만

두 끼를 충족하게 먹으니

저녁을 굳이 같은 걸 사서 먹을 필요는 없었다

친구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으니

밀가루와 감자를 사서 수제비를 해 먹는가 하면

쌀도 사서 감자 넣고 죽도 잘 쑤어 먹었다 

 블루베리, 살구, 체리는 떨어지지 않게 사 먹고 다녔다

식사 중에 아르미네 현지 가이드의

능숙한 전통무용 공연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르메니아 예레반 츠바르트노츠 국제공항에서

인천까지 직항이 없기에 두바이를 경유한다 

두바이 2 터미널에 도착하면 바로 두바이 관광일정이다 

여행 일정 중에 옵션

가이드 추가비용 일절 없는 세미투어였다

여행지에 이동하면 오후엔 자유일정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시장도 보고 더 많이 여행지를 볼 수도 있었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는 컨셉이었다

두바이 일정만큼은 도착하는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 40분 출발하는 시간 중에 저녁까지

자투리 투어는 옵션이었다

두바이에서 53층 올라가 야자수 인공도시를

볼 수 있으면

투어 하겠지만 그 일정은 빠져 있었다

 

 

6개월 전에 이집트 여행하면서

두바이를 관광했기에 똑같은 코스를

옵션 100불을 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전에 긴 시간을 혼자 있을 수 있냐고 하길래 

공항에 혼자 있겠다 했다

2 터미널에서 일행들과 헤어지며

인솔 팀장이 출발은 3 터미널에서 한다고 해

안내자한테 항공권을 보여주니

바로 옆에 터미널 내 셔틀버스를 타라고 한다 

20여분을 버스 타고 이동하여 3 터미널 도착이다  

1 게이트부터 50 게이트까지 있었다

중간인 23 게이트에서 머물며

면세점도 돌아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공항 밖 두바이는 섭씨 38도 찜통더위에

땀을 흘리며 일행들 투어 중이다  

 

3 터미널에서 

인천 터미널로 출발하는 게이트가 항상 변수는 있기에

발권 때 기재를 안 해 놓았다

중간중간 알아보았지만 

전광판 (departure )에 올라오지 않았다

왜냐면 터미널 옮긴다 해도 바로 옆이 아닌

차를 타고 20여분을 이동시간이 걸린다

저녁 8시 넘어도 어느 게이트인지 몰라 안내자한테 물었다

전광판에는 뜨지 않았지만 그분의 핸드폰에는 떴다며

인천 공항으로 가는 항공게이트는  A1이라고 하면서

내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 쪽으로 가라고 한다

 A1 게이트 이정표를 보며 가다 보니

3 터미널인데도 워낙 크고 넓어서 이번엔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A1 게이트 찾아가서 다시 확인해 보니

지금은 맞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 변동될 수도 있다 했다

두바이 항공터미널이 워낙 커서

1 터미널 2 터미널 3 터미널이 있는데

우리나라 인천 1 터미널과 2 터미널만큼 거리가 있었다

유명 관광지는 움직일 수 없는 늘 제자리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움직을수 있는 사람이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는 말에 동감이다

글로벌 시대에 가만히 앉아도 관심있으면 

인터넷에 모든 걸 거의 볼 수가 있지만

발품에 담겨 있는 기억의 무게도 나에겐

참으로 소중하다

 날씨 운까지 좋았던 21일 긴 여정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

기억 저편에 추억의 여행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