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기

두바이,이집트 9박10일 여행기 3부

오드리오드리 2024. 2. 6. 17:44

 

 

두바이,이집트 9박 10일 3부

11월 28일~12월 7일 

카이로, 아스완, 아브심벨, 콤옴보, 에두푸, 룩소, 후르가다

 

크루즈, 아브심벨, 람세스 2세, 오아시스,

콤옴보, 에두푸, 호로스신전, 나일강,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이집트 대표적 관광이라 생각한다 

도시 카이로에서 465km 떨어진

나일강 북쪽으로 갈수록 

피라미와 스핑크스는 잊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유적지가 많다고 한다

나일강의 최북단에  자리한 아부심벨을 가기 위해

 새벽 3시 30분기상하여 4시30분에 아침 <빵, 음료, 과일>

도시락가방을 받아 들고 쿠르즈에서 캄캄한 새벽에 나섰다

 

이집트는 사하라 사막 지역에 속하지만 아브심벨은 

수단과 가까운 국경지대에 있다

밤길에 사고 방지를 위해 

경찰이 사막으로 들어가는 차량을

 일일이 체크해야만 통과한다 

3시간 소요되는 중에 아침여명이 밝아오며

2시간 만에 허술한 판잣집 같은 휴게소 도착이다

하루 스쳐가는 여행객이 2만명이라니

화장실 이용료 2,3명이 1달러

돈 버는 거 참 쉽다 

 

 

황량하고 건조한 땅에서

많은 먼지를 마셔가며 살아가는 거 같았는데  

나일강 언저리에 주요 작물인  , , 옥수수밭에

거대한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보기 드물게 푸른 들녘을 처음 보였다 

 

이집트 최고의 왕 람세스 2세를 기리는 아부심벨
카이로에서 가장 이집트다운

피라미드 유적과 만났다면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이었던

매부리코 람세스 2세의 신전이다

 이집트 왕 가운데 영토를 크게 확장한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업적을 아부심벨에 신전을 세웠다

건축의 대왕으로 불릴 정도로 이집트 전역에

방대한 도시와 신전과 기념물을 세운 그였다

 

사암 절벽을 깎아 만든 신전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모습을 표현한 4개의 거상이 있고 

높이가 20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어마어마한 람세스 좌상 4개가

굽어 살피는 듯 보였다

왼쪽에서 두 번째 좌상은 머리 부분이 떨어졌는데

람세스 2세 재위시절 지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어

발견당시 그대로 놓았다고 한다

다리 사이로 아들딸들이

무릎아래 작은 크기로 조각되어 있었다

 

어두운 신전 내부에 1년에 단 2일만 햇빛이 드는 신전

매년 2월 22일과 10월 22일 두 차례 일출과 함께

신전으로 점차 스며든 햇살이 벽을 밝히면서

아문신과 람세스 2세와 조각상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한다

태양신을 믿으며 일조량을 계산할 만큼 

치밀했던 기술과 상상력이 대단하다

처음엔 람세스 2세의 생일인 2월 21일과 

대관식일인 10월 21일에만

빛이 들어오게끔 설계 됐었다

하지만 아스완 하이댐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뒤 몇 년을 걸쳐

검증하면서 하루씩 늦춰진 것이다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낫셀 대통령은

나일강에 댐 건설을 계획했다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되면 람세스 2세의 암굴 신전과

그 부인 네페르타리 신전이 물에 잠기게 된다
1959년 4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사단은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건축예술이

소멸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은 어느 한 국가의 문화재가 아니다

 

이 지구상 모든 인류의 문화재이므로

모든 인류가 보호하고 간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호소가 받아들여져 세계 50여 개국

 지도자들이 성금을 내기 시작하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전 공사비의 1/3에 해당하는

1천2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1천 달러의

성금을 내놓아 이 계획에 동참했다

 

처음 아브심벨 신전 건설기간만 20년 정도로

 기원전 1265년에 완공한 것을

오랜 시간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발견된 것이다

1813년 부루크하르트리라는 탐험가가 방문했을 때

안내단을 이끌던 소년의 이름이 "아부"

그 이름을 따서 "아브심벨신전"이 되었다는 설

이집트 지폐 1파운드에 아브심벨 신전이 새겨져 있다

 

원래 아브심벨 신전은 바위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신전이었다 

람세스 2세 신전과 네페르타리 신전을 옮기는데

각국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았지만

최종 심의에서 이탈리아 안이 채택되었다

먼저 거대한 인공산을 만들어 당시 위치보다

높이 68m와 호수에서 200m를

뒤로 이동시켜 설치한 것이다

 

신전을 작게 잘라 <돌은 평균 20톤 크기>

이때 톱으로 1만 6천 개의 조각으로 잘라

 6년 만에 재 조립해 성공했다

자를 때 생긴 돌가루를 최대한 모아서

신전을 다시 복원시킬 때 재사용하였고 

매몰이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는 이글루 형태의

철근 콘크리트돔을 설치했다고 한다

댐 수위보다 높은 곳으로 옮기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던 공사였다

정면과 달리 뒤쪽에는 남은 벽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민둥산에 불과하다

 

람세스 2세는 66년 재위기간 중에

  77명의 많은 부인으로 두어 자식이

 100여 명이 넘게 두었다는 설이다

재위 25년 만에 첫 왕비 네페르타리 죽고

그 뒤로 혈통을 중시하여

딸도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그들이었다

투탕카멘도 부모가 친족관계로 결혼하여

장애를 갖고 태어난 가장 짧은 왕권으로

생을 마감했던 인물이다

 

사하라사막의 일부이긴 하지만 

사막 끝에 어렴풋이 보이는 건 오아시스

말로만 듣던 신기루가 나타난 것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어른거리다 없어지는 신기루

길을 잃은 나그네가 물을 찾아간 것이

지금까지 못 돌아온다는 가이드의 위트였다

 

 

유적지를 들어 갈때 아니면

나올 때는 기념품 파는 곳을 지나게 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이 머리에 쓰는 터번을 사려고

흥정에 들어갔다

10달러 부르길래 반값으로 후려쳐서 잘 샀다고 했더니

다음번엔 3달러 1달러까지 내려갔다

 

 

크루즈 호텔로 돌아왔다

 5층 규모의 크루즈에 2층엔 식당

3,4층은 객실 갑판에는 풀장에

커피와 다과를 무료로 제공되고 

강변 경치를 볼 수 있는 수영장이 있으며

파라솔 비취의자가 놓여 있어서

 잠시나마 저녁 식사시간 전 망중한을 즐겼다

 

 

이집트와 그리스 건축양식이

혼합된 신전이 콤옴보라고 한다

아스완 크루즈에서 북쪽으로 2시간 30분을 이동하여

기원전 332년에서 395년 사이에 세워진

신전 관람이다

악어머리 형상을 한 소베크 신

<나일강 범람을 관장하는 악어의 신>과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신에게

바쳐진 신전을 콤옴보라고 한다

 

 

이집트 인들은 악어를 온갖 위험이나 재해를

막아주는 성스러운 동물이라 여겨

집에서도 기르는 풍습이다

 콤옴보 신전을 끝내고 악어를 신성시 모시는

악어알과 악어 미이라를 전시회 해놓은 곳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소베크 작은 박물관이다

 

 

기원전 303년경 세워진 신전

악어의 신 소베크,

또 하나는 매의 신, 호루스를

이집트 역사상 유일하게 두신을 위해

 쌍둥이처럼 만들어진 구조

 위부분이 아칸서스잎 모양을 섬세하게 새겨진 조각과

여백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외과 수술용 기구와 아기 출산하는 모습

남자의 거시기 왕으로 표현은 대단하며

여행객들이 많이 만져서 검은색으로 변했다

달력도 새겨져 있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나일강 범람기,

파종의 시기,

수확기를 개자리

별(dog star, sirius star)이 일출 직전

동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기,

나일강이 범람하는 간격을

<365일> 1년으로 정했으며

 

 

달모양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걸리는 기간 <30일>을 한 달로 정했다

달력에는 각각의 달을 표시하고

그달에 해야 할 농사일들을 상형문자로 새겨 놓았다

우리나라 절기처럼 

그들도 살아가기 위한 지혜였던 것이다

 

 

호루스 신전이 있는 에드푸로 이동 

매를 형상화 한 신이며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호루스 신전

매의 동상이 있는 건 바로 신이다

얼굴이 매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신 상들이 벽화에 새겨져 있고

하늘의 주인인 매의 신 호루스가

무서운 눈으로 왕의 직무를 감시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흙속에 묻혀 있던 것을 20세기 초에

프랑스 고고학자가 발굴했으때 완전한 상태도 있었고

일부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왕족의 유적지이고

부속건물도 그대로 방치된 채 곳곳에 쌓여 있다 

너무 많은 유적지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루즈 3일째 투숙 중

저녁식사 후 9시경에 벨리댄스도 공연한다는데

못 보고 안락한 크루즈 침대에 연신 몸을 던졌다

정박해 있으니 흔들림 없이 일찍 잠들었다

보통 크루즈는 좁은 객실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2인실 넓은 침대가 호텔급이었다

 

 

망고 생주스도 원하는 만큼 마셔도 되는 뷔페식이고

식사 때마다 바뀌는 메뉴도 좋아 불편함이 없었다

열악한 침대 기차 생각했다가 크루즈는 호사였다

 

 

왕가의 계곡으로 버스 이동하면서

잠깐 멈출 때 밝게 웃어주는 순수한 여인 

길가에는 꽃잎이 종이처럼 얇은

페이퍼 플라워라는 꽃이 유일하게 보였다 

 

무채색으로 보이는 희뿌연 먼지 속 건물들

나일강에서 물고기 잡는 어부의 모습도

간간이 보이는 창밖의 풍경들이다  

 

 

버스 타고 지나가는 주변 도시들은

거의 미완성된 건물로 전쟁이 끝난

 한참 후에 모습들로 보였다

 

 

완성해 놓으면 세금이 부과되고

아버지 세대에 1층만 지어놓고

2층은 뼈대만 만들어 놓고 그냥 살다가 

 아들이 커서 완성시키는 이상한 형태의 구조였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외관상은 막 버리는 쓰레기에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정책이었다 

4부로...